안녕하세요?
김지람입니다.
근 3년동안
여러번 캄보디아를 오갔지만, 이번이 가장 장기간 머무는 중입니다.
그 동안 저는 성도님들의 정성을 다한 기도와 교회의 보살핌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낯선 땅 캄보디아에서 살면서, 외롭다거나 문명충격이나 특별한
영감이 떠오를 때 종종 글을 쓰게 됩니다.
그런데 그 동안 쓴 글을 보면 낯 선 환경과 열악함에 늘 징징거리는 모습 뿐이고,
어느 한 날도 시원함과 씩씩한 모습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ㅠㅠ
그러다 보니 내 성격 자체가 그런가? 하는 회의도 들었어요. ㅎㅎ
너무 덥고 습해서인지, 늙어서 인지 깊은 잠을 자는 게 힘이
들 때가 잦아요.
그럴 때 때도 시도 없이 자다 (누워
씨름하다) 일어나 부스럭대다가 새벽쯤 잠이 들고, 아침 출근하는게 바쁨니다. ㅋㅋ
작년에 장로님 부상으로 귀국해서 간병인 생활을 하면서, 간병인이라도
한국이 좋다고 종종 말하곤 했지만 마음은 온통 캄보디아에 있었습니다.
물리치료 기간 동안 장로님과 함께 캄보디아에 지내면서 저는 프놈펜에서 삼
개월 가량 언어 배우던 도중 장로님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저는 사역지에서 갑자기 전임자(여 목사님)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가르치던 다섯 명의 학생을 맡아 벅차게 씨름하며 살고
있습니다.
배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 나라,
더구나 시골에서 ...
그러나 만나기 드문 귀한 영혼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우리와 다른 교육환경에서 어렵게2~4년제 대학을 마치고 직업이 있지만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전액 장학제도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찾아온 인재들입니다.
이곳은 7시에 일과를 시작해서 11시정도에 일과가 끝이 납니다.
애게 쉽네!
하지만 한낮의 열기
때문에 낮엔 일할 수 없는 환경이고, 오후에 다시 농사나 알바나 이런저런 일을 해야 하는 힘겨운 일상입니다
그런 오후에 별 천지처럼 하나뿐인 에어컨 교실에서 1시부터 수업을 합니다.
하지만 거의 낮엔 계획정전( 전기사정이….)으로 선풍기조차 켤
수 없을 때가 더 더 더 많아요.
건기에는 40 도를 오르내리고, 하루 종일, 자다가 한번 화장실을 갈 정도로 땀으로 수분을 ...
처음으로 건기를 겪은 제가 자랑스럽습니다.
한국의 선교사 대부분이 건기에는 한국으로 가서 활동을 합니다.
한국의 경제사정으로 한국의 1,000원에
캄보디아 화폐 4,000 리엘 하던 시장환율이 3,500원으로 낮아지고, 후원도 많이 끊어지고, 총장목사님을 후원하던 주력 세력들도 은퇴를 많이 하다
보니 학교 경영도 그만큼 힘들게 되었다고 하네요 ㅠㅠ
그 동안 밥 값을 내면 현지 스텝이 한식으로 공동 취사를 해줬는데 이젠 각자가 취사를 하라고 해서 아주 아주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매점 겸 식당을 하는데
해 먹기 싫으면 한끼에 3~7천원하는 식당 메뉴를 사먹어야
합니다
밥 한끼 하려면 땀을 한 컵 정도는 흘려야 하는 것 같아요.
여기 재래시장에 일주일에 한번 차를 태워 데려다 줍니다.
쥐 고기, 뱀 고기, 개구리, 펄펄 뛰는 민물 장어….낯 선 먹거리 속에서 찾은 몇 가지 야채, 오리알, 걸어놓고 파는 생고기( 파리가 장난 아니겠죠 ㅋㅋㅋ)장보기는 늘 똑
같은 것만 사게 됩니다.
이곳 물가는 휘발유나 계란, 오리 알 등은 한국과 비슷합니다.
야채나 쌀은 싸고, 공산품은 한국보다 비쌉니다.
제조시설이 없고 대부분 수입이라 그렇습니다.
과자도 태국에서 수입해서 옵니다.
한국 식품은 프놈펜에서 파는데 한국보다 130~200% 비쌉니다.
제가 퇴직 후 한국에서는 염색도 파마도 않고 살았는데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염색을 혼자 하지만 파마하러 한국사람이 하는 미장원엘 갑니다.
체감물가 때문에 멀미가 납니다.
이 나라 풍토병으로 한국 사람들도 종종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길거리 음식, 물, 음료수, 과일 들도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면역이 있지만 외국인은 치명적입니다.
그리고 뎅기열과 말라리아는 현지인들도 외국인도 예외일 수 없어요.
우기 때는 국토의 1/3 이 물에 잠겨서 뱀이나 전갈 등 독충들이 뭍으로 올라와 사람이 많이 죽습니다.
제가 악착같이 밥을 해 먹는 이유는 학생들의 간식을 제공하기 위해서예요.
먹는 게 시원찮은 애들이 그 나마 쉬어야
하는 시간에
공부하러 오니 세 시정도에는 기진맥진해서 허깨비가 앉아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쉬는 시간에 간식을 먹입니다.
다양하진 않지만 그래도 영양식으로 준비해 주니까
그 후부터 오후 수업이 원할 해졌습니다.^^
실력 시원치 않은 샘이 먹는 것으로 미안함을 커버해 봅니다.^^
삶은 어느 곳이나 치열합니다.
애들의 삶을 자꾸 알아가다 보니 영양실조도 보이고
어려운 가정형편도 보여서 참 괴롭습니다.
오토바이 기름이 없어 학교를 결석하는 때도 있고, 너무 허약해서 젊어도 아프면 얼른 일어나질 못해 결석하는 얘들도 있어요.
어떤 땐 제가 챙겨먹는 한국에서 흔해빠진 비타민 씨를 나눠 먹기도 합니다.
한국에선 종류별로 건강보조식품이며 영앙제를 먹다 실증나 안 먹고 버리는 게 부지긴데.....
그래도 워낙 약을 안 먹던 체질이라 금방 약발을 받는지 훨씬 나아 보이기도 합니다.
숙제를 잘 해오면 전화카드를 상으로 주기도 합니다.
다 구제할 수 없지만 제게 맡긴 영혼들에게는 그래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듭니다.
처음에는 에게?!
다섯명이야?
하던 마음이 지금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ㅋㅋㅋ
가끔, 아니 성수기 때는 단기선교단 등이 이곳을 찾는데
한식으로 밥을 하니 그땐 공짜로 얻어 먹습니다 ^^
먹는 게 이리도 중요할 줄 몰랐어요.ㅠㅠ
농업이 주 산업이며 불교국가인 이 나라에 많은 변화가 갑자기 찾아옴을 느낍니다.
중국이 동지나해로 진출하기
위해 캄보디아 땅을 휩쓸어 사고 있지만 관료들도 오른 땅값에 땅 팔기 즐거워하고, 돈 구경 못하던 농민들도 그냥 땅을 넘깁니다 .
특유의 화교 집단을 만들어 퍼져 가는 속도는 큰 도시( 도 단위)를 점령하고
상권과 문화를 장악합니다.
가난하지만 순박했던 나라가 삽시간에 듣도 보도 못했던 흉악범죄가 발생하고
향락적으로 변해 갑니다.
무슬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30만명을 넘고 할랄
식품 인증을 돈 풀어서 마구 하면서
기도처를 학교며 대중시설에 공식적으로 설치 하고, 교복대신 히잡을 쓸 수 있게 정부의 허가를 받아냈습니다.
기독교 인구는 약 4만명인데 무슬림에 비해 좀처럼 늘지 않습니다.
보내신 선교사님들은 정말로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오늘도 학교 본관 복도에서 뱀이 기어다네요ㅠㅠ
소설 같이 긴 보고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연락 드릴께요^^ 2019.6.27